전 세계 모두를 “한 턴만 더” 부르짖게 만든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문명’ 시리즈도 어느덧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예전에 비해 그 위세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이름만으로도 남다른 감회를 전달하는 작품인 것은 분명하죠.
개발자 입장에서도 한 게임으로 30년을 이어온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개발자 ‘시드 마이어’도 지난 ‘문명’ 30주년 영상에서는 본인이 깜짝 등장해 그간 뜨거운 성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짤막한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죠.
다만, 이걸로는 부족하기 마련! 이번에 마침 미디어 인터뷰 기회가 주어진 덕분에 개발자 시드 마이어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과연 ‘문명’과의 30년은 그에게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개발자 인터뷰
Q. 처음 ‘문명’을 개발했을 때, 이렇게 30주년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나요? 그 인기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처음 ‘문명’을 개발한 것은 상당히 실험적인 시도였습니다. 당시에는 4X 게임이라는 개념도 없었기에, 달리 토대로 삼을 것이 없었다고 할 수 있죠. 그래도 ‘레일로드 타이쿤’을 만들면서 처음에 작게 시작하고 점차 키워 나간다는 점에서 소위 말하는 ‘갓 라이크’ 방식의 게임은 만든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세계라는 보다 큰 범위로 다뤄보는 것은 어떨까? 전 세계의 역사를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라고 생각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문명’을 처음 작은 팀을 구성해서 만들고 있을 때는 옆에서 다른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당대 인기 영화 ‘탑건’ 기반의 게임이었죠. 이런 점에서 우린 비밀리에 한 구석에서 게임을 만들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는 너무 혁신적인 부분이 많았기에, 기획 단계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으면 아마 시작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근데 결국 ‘문명’은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죠. 사실 지금처럼 30년이나 이어질지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성공의 비결이라고 한다면, 역시 플레이어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존중하는 한편, 군주라는 남다른 위치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크지 않나 싶습니다.
Q. 아무래도 ‘문명’도 이제 6편을 넘어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다음 작품을 개발한다면, 인류사라는 범주 안에서 꼭 담아보고 싶으신 부분이 무엇인가요? 그리고 기존에 공개되진 않았지만, 혹시 만들어보고 싶었던 소재가 있는지 알려주세요.
A: 현재 우리가 중점을 두는 부분은 게임에 어떤 것을 더해서 즐겁게 만들지, 그러는 동시에 너무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1/3 전략으로 개발에 임해왔는데요. 처음 1/3은 원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군사, 외교, 과학 같은 부분은 유지하고, 두번째 1/3은 종교처럼 부가적인 요소는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하고, 남은 1/3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것이죠.
인류사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는 6000년의 방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더할 콘텐츠도 메마를 일이 없죠. 과거 혹은 미래를 조금 더 다뤄볼 수도 있고, 전에 조명되지 않은 새로운 문명과 리더를 더할 수도 있죠. 매 작품마다 다양성에 큰 신경을 썼고요. 온 세상의 문명을 다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음 작품의 ‘문명’에도 이런 방향성이 계속해서 반영될 겁니다.
추가로, 다른 소재의 게임이라고 한다면 항상 ‘공룡’에 대한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개발 시도도 해왔는데요. 제가 상상하는 것만큼 공룡을 멋지게 그려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언젠간 기회가 된다면, 공룡에 대한 게임을 꼭 한 번 선보이고 싶습니다.
Q. ‘문명 6’에서는 ‘프론티어 패스’를 선보이면서 주기적인 업데이트를 제공해왔는데요. 이런 DLC 패스 판매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A: 저는 개인적으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에 계속 신선함을 더하기도 하고, 유저들도 한 번씩 불러모을 콘텐츠니까요. 개발팀이 커져갈수록 더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고, 기술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식으로 게임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Q. 일전에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로부터 30년도 지났는데요. 여전히 그 정의가 통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A: 예, 아직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게임에 들어가는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그래픽, 사운드, 유저 인터페이스 모든 방면이 달라졌지만, 결국 게임 플레이는 온전히 플레이어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게임 플레이가 중심에 서는 것은 변함이 없죠.
Q. 지금까지 수많은 게임을 개발해왔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아마 제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역시 ‘문명’… 그 첫 타이틀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라, 기술 트리부터 군사와 같은 시스템 전체를 그야말로 처음부터 조율했기 때문이죠. 그래도 제가 만들어온 게임들 모두 아이들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최고의 아이를 꼽기는 힘든 법이죠.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그 나름의 특색을 전부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도 굳이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첫 ‘문명’ 작품입니다.
Q. 최근 게임업계에서 블록체인, NFT 같은 기술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이런 변화들이 생기는 이유가 게이머들이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실상 NFT도 그 흐름에서 파생된 부분이라 할 수 있죠. 가령, 옛날 ‘문명’ 같은 경우는 처음에 160p에 달하는 두꺼운 매뉴얼을 제공한 것처럼 말이죠. 자고로 게임이 즐거우면 게이머는 더 원하는 법입니다. 블록체인이냐, 메타버스냐… 각자 다른 의미이기는 하더라도, 결국 즐거운 게임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연속성을 가진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즐거운 게임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결국 그 주변에 붙는 것들은 그 이후의 즐거운 경험을 키워가는 것이죠.
Q. ‘문명’이 게이머들에게 어떤 게임으로 기억되길 원하나요
A: 저는 ‘문명’이 사람들을 묶어주는 것이 됐으면 합니다. 이전에 파이락시스콘을 열고 유저들과 마주하는 행사를 진행한 바 있는데요. 당시 부모와 아이들이 같이 ‘문명’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서로 하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함께 즐기고 있었죠. 그런 모습처럼, 앞으로도 ‘문명’이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고 공통적인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게임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Q. 한국 팬들에게 한마디도 부탁드립니다
A: 네, 물론이죠. 일단 한국 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매일 컴퓨터 앞에서 게임 개발에 몰두하면서, 가끔 바깥에 거대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까먹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면서 이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환상적이죠. 게임이 글로벌 전체의 경험을 하나로 묶어준다고 할 수 있죠. 이런 게이머들의 열정이 결국 ‘문명’을 계속 이어가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매번 팬들이 전하는 성원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한국 문명은 항상 최고로 유지하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덤으로 ‘문명’에게 30살 생일 축하합니다.
